2000년대 후반부터 챔피언스리그 단골팀이 된 도르트문트와 비록 지금은 분데스리가 2부리그로 강등당했지만 독일에서 명문팀으로 꼽히는 FC 샬케04...
많은 축구팬들에게는 익숙한 분데스리가 팀이지만, 이 클럽들의 역사는 광부의 역사와 같이 한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모르실 겁니다.
광부들의 휴식, 축구의 시작
독일 서부, 루르 공업지대의 하늘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검은 석탄 먼지로 가득했습니다.
이 지역은 유럽 최대의 석탄 생산지로, 수많은 광산과 제철소가 밀집해 있었죠.
하지만 이 어두운 광산의 갱도 속에서, 오늘날 독일과 세계 축구의 빛나는 보석들이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루르 지역의 광부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지하에서 보냈습니다. 햇빛을 보기 힘든 이들에게 주말은 귀중한 시간이였습니다.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 광부들은 작은 공터에 모여 축구를 했습니다.
이러한 연대감으로 1904년에 겔젠키르헨의 광부들이 모여 FC 샬케04를 창단했습니다.
클럽 이름의 '04'는 설립 연도를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베스트팔리아 샬케'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곧 지역 광산의 이름을 따서 '샬케04'로 개명했죠.
샬케의 상징색인 파란색은 광부들의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1909년, 트리니티 청소년회의 축구부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VB)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당시 도르트문트는 철강산업과 맥주 양조업이 발달한 도시였고, 클럽의 팬 기반은 주로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클럽의 노란색과 검은색 유니폼은 지역 맥주의 색상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지만, 일부에서는 광산의 금색 광석과 석탄의 검은색을 상징한다고도 봅니다.
광산의 가치, 축구의 정신
루르 지역의 축구 클럽들은 광부들의 삶과 가치를 반영했습니다.
지하 갱도에서의 작업은 개인의 능력보다 팀워크와 연대가 중요했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가 모두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공동체 의식과 팀워크는 자연스럽게 이 지역 축구 클럽들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샬케04의 별명 '크나펜(Knappen)'은 '광부 견습생'을 의미합니다.
이 별명은 클럽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샬케가 1930-40년대에 개발한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인 '샬커 크라이젤(Schalker Kreisel)'은 짧은 패스와 포지션 교환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좁은 광산 갱도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일하는 광부들의 작업 방식과 닮아있습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에히터 리베(Echte Liebe, 진정한 사랑)'는 노동계급의 충성심과 연대의식을 반영합니다.
현재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인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응원 문화로 유명한데, 특히 남쪽 스탠드인 '쥐트트리뷔네(일명 옐로우 월)'의 열정적인 응원은 노동계급의 단결력과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노동계급의 자부심, 클럽의 정체성
샬케04와 도르트문트는 단순한 축구 클럽을 넘어, 지역 공동체와 노동계급의 자부심을 대변해왔습니다.
이들 클럽의 성공은 하루종일 지하에서 일하는 광부들에게 큰 위안과 자긍심을 주었죠.
![]() |
도르트문트을 창단한 청년들 |
1930-40년대 샬케04의 전성기는 지역 사회에 큰 자부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천왕별들(Die Königsblauen)'이라 불리던 샬케는 이 시기에 독일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습니다.
광부들은 자신들의 대표팀이 전국을 제패하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고 느꼈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1966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을 들어올렸을 때, 이는 단순한 스포츠 승리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당시 독일 경제의 중심이었던 루르 지역의 노동자들이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역 신문들은 "광부들의 아들들이 유럽을 정복하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했습니다.
탄광의 쇠퇴와 클럽의 도전
196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석탄 산업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값싼 해외 석탄의 수입과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대체 에너지원의 등장으로 루르 지역의 많은 광산이 문을 닫아, 지역 사회와 축구 클럽들에게 큰 위기가 닺쳤습니다.
1970-80년대 샬케04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2부 리그를 오가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광산들이 하나둘 폐쇄되면서 클럽의 정체성과 재정적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겔젠키르헨의 마지막 석탄 광산인 '노트 샬케'가 문을 닫자, 많은 이들이 샬케의 미래를 비관했습니다.
도르트문트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1970년대 철강 산업의 쇠퇴와 함께 클럽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고, 1972년에는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팬들과 지역 사회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클럽은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위기는 또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두 클럽은 전통적인 산업 기반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가치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축구의 상업적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죠.
다시 부활안 클럽들
1990년대와 2000년대, 샬케04와 도르트문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부활했습니다.
샬케는 1997년 UEFA컵(현 유로파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되찾았고, 2001년에는 '4분 챔피언'으로 불리는 극적인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 |
샬케04 1997년 UEFA컵(현 유로파 리그) 우승 |
도르트문트는 1997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정상에 올랐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위르겐 클롭 감독 하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 |
도르트문트는 1997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
두 클럽 모두 현대화와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도 노동계급의 가치와 전통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샬케의 홈구장인 펠틴스 아레나(현 폭스바겐 아레나)는 2001년 개장 당시 유럽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지만, 경기장 지붕은 지역의 산업 유산을 기리기 위해 광산의 갱도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
샬케04 홈구장 |
도르트문트는 2000년 주식시장에 상장되며 현대적인 기업 구조를 갖추었지만, 동시에 티켓 가격을 비교적 저렴하게 유지하여 노동계급 팬들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옐로우 월'로 불리는 남쪽 스탠드는 세계 최대의 스탠딩석으로, 노동계급의 축구 문화를 보존하는 상징이 되었죠.
현대 축구에서의 노동계급 가치
21세기의 글로벌 축구 시장에서, 루르 지역의 클럽들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라이프치히나 호펜하임 같은 기업 지원 클럽의 등장과 외국 자본의 유입은 전통적인 독일 축구의 가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도르트문트는 "축구는 팬들의 것"이라는 모토 아래, 50+1 규칙(독일 축구 클럽의 과반수 지분은 회원들이 소유해야 한다는 규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팬 중심의 클럽 운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
도르트문트 관중석 |
샬케 역시 회원 중심의 클럽 구조를 유지하며, 매 홈경기마다 광부들을 무료로 초대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죠.
두 클럽의 팬들은 현대 축구의 지나친 상업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티켓 가격 인상, 경기 일정의 TV 중심 변경 등에 조직적으로 저항합니다.
![]() |
샬케04 관중석 |
이는 축구가 노동계급의 스포츠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뿌리를 기억하고, 모든 계층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남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경쟁 속의 연대, 샬케04와 도르트문트 더비
![]() |
샬케04와 도르트문트 레이어 더비 |
샬케04와 도르트문트의 라이벌전인 '루르 더비'는 독일 축구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기 중 하나입니다.
두 도시는 불과 30km 떨어져 있고, 서로 다른 산업(겔젠키르헨의 석탄과 도르트문트의 철강/맥주)을 기반으로 했지만 같은 노동계급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라이벌전이 영국의 더비와 달리 심각한 폭력 사태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기장에서는 서로를 향한 야유와 조롱이 오가지만, 경기 후에는 종종 양 팀 팬들이 같은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두 지역이 공유하는 노동계급의 연대의식과 상호 존중에서 비롯된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도르트문트 팀 버스가 테러 공격을 당했을 때, 샬케 팬들은 "겔젠키르헨은 당신들과 함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또한 2007년 샬케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때, 도르트문트는 자금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순간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노동계급 공동체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노동자의 리그에서 세계의 무대로
오늘날 분데스리가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리그 중 하나가 되었고, 도르트문트와 샬케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루르 지역은 더 이상 석탄과 철강의 중심지가 아니지만, 이 지역의 축구 클럽들은 여전히 노동계급의 가치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르트문트의 '쥐트트리뷔네'에서 옐로우 월을 형성하는 25,000명의 팬들, 샬케 경기 전 울려 퍼지는 광부들의 노래 '슈타이거리드(Steigerlied)',
그리고 두 클럽 모두의 저렴한 스탠딩석 티켓은 노동계급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전통적 가치가 오히려 현대 축구 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과도한 상업화와 팬들이 소외되는 현대 축구 환경에서, 도르트문트와 샬케가 보여주는 팬 중심의 문화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죠.
한때 지하 깊은 곳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소박한 오락이었던 축구는 이제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중심에는 샬케04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같은 노동계급의 클럽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부심, 그리고 연대의 상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루르 지역의 광산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광부들의 정신은 축구를 통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시그날 이두나 파크와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들리는 함성 속에는 노동계급의 자부심과 광산 갱도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희망의 불빛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독일 광산 지역 축구 클럽들이 전 세계 팬들에게 전하는 가장 소중한 유산입니다.